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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 admin

이시이 유야(石井裕也) 감독의 행복한 사전(舟を編む, 2013)은 한 출판사에서 사전편찬자를 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책임자는 직원들을 상대로 오른쪽을 정의해보라고 한다. 질문을 받은 주인공은 서쪽을 보고 섰을 때 북쪽이 오른쪽이라는 시답지 않은 대답을 한다. 영화감독은 말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고 창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확실한 답을 담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독자분들도 잠시 읽기를 멈추고 왼쪽과 오른쪽을 정의해 보기 바란다.
한자의 뜻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가장 오래된 갑골문을 살펴보아야 하는데 아쉽게도 左(좌)와 右(우)는 발견이 되지 않았다. 다만 그 뒤로 이어지는 청동에 새긴 금문(金文)에서는 입(口)을 그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글자를 쓰거나 읽는 사람을 기준으로 왼편에 손을 그려넣으면 좌가 되었고 그 반대로 하면 우가 되었다. 이는 간단하지만 아주 명백한 정의이다. 허나 두 글자는 좌우로 대칭이라서 보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뒤바뀔 위험이 있다. 그래서 나중에는 왼쪽을 나타내는 글자에서 口를 言이나 工으로 바꿔 오늘날과 같은 모양(左)이 되었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의문은 있다. 글자가 발명되기 이전에 중국사람들이 ‘좌’와 ‘우’라고 하는 말소리에 담았던 뜻은 무엇이었을까? 원래는 말소리에 뜻이 있었겠지만 한자가 만들어지면서 말이 가진 원래의 뜻을 완전히 삼켜버려 이제는 알 길이 없다.
오랫동안 한자를 사용하였음에도 우리 말소리에는 고스란히 뜻이 남아 있다. 우리 조상들은 한자와 같이 눈에 보이는 대로만 보지 않았고 어느 쪽 손을 쓰는 사람이 더 많은지를 따랐다. 왼손잡이보다는 오른손잡이가 더 많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다. 이는 구체화하는 한자와는 달리 추상화의 방법으로 매우 고차원적인 사고방식이다.
외는 외롭다, 외지다에서와 같이 ‘적다’의 뜻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외아들, 외동딸, 외따로, 외팔이, 외(나무)다리, 외눈박이와 같이 ‘하나’의 뜻으로 축소되었다. 또 다른 경로로는 ‘옳지 않다’의 뜻을 가진 외다로 확장되었다. 즉 ‘소수의견’이라는 뜻이다. 오늘날에는 ‘그르다’ 혹은 ‘틀리다’로 설명하지만 사실 그런 뜻으로 만든 말이 아니었다.
반대는 ‘오른쪽’이다. 여기에서 올은 머리카락이나 실과 같이 긴 가닥이 많은 것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많은 가닥을 세는 단위로도 쓴다. 중세시대의 낱말을 살펴보면 ‘오’이 줄어들어 올이 되었고 ‘오’은 축약되어 온이 되었다. 올은 다수(多數)나 전수(全數)를 뜻한다. 그러므로 오롯이는 많이 혹은 빠짐없이 모두, 올곧다와 올바르다는 모두 곧거나 바르다의 뜻임을 추론해 볼 수 있다. 한편 온은 백(百)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온세상, 온몸, 온종일, 온갖, 온통 등과 같이 전부(全部)를 뜻한다.
올은 모두를 나타내는 말이라서 반대의 뜻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오롯이’와 비슷한 오로지와 오직은 전체를 말하는 것이지만 이 두 말은 ‘하나’와 결합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하나’를 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원에 충실하게 ‘모든 것이 향하는’ 정도로 풀이를 하는 것이 옳을 듯 하다.
애초 옳음은 많음과 비슷한 개념이었지만 ‘올’에 ‘하다’가 결합하여 옳다로 옮겨가면서 오른쪽은 바른쪽으로도 부르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로 영어 right도 ‘오른쪽’과 함께 ‘바르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옳다’는 ‘맞다’, ‘바르다’와 같은 말이 아니다. ‘적다’와 ‘많다’로 구분하는 것은 좋은 접근이었으나 더 나아가서 수가 많다고 맞고 적다고 해서 틀리다고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는 못하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터이고 아마도 시간이 흘러 본래의 뜻을 잊고 말을 혼동한 것이 아닌가 한다.
말의 뜻은 변하기 마련이지만 오래 전에 만든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서 오늘날에는 말을 재정의해서 써야 한다는 주장이 흔해졌다. 또 본래의 뜻을 알기 어렵게 되었으니 그것을 밝히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새롭게 정의해서 쓰는 말도 많다. 그렇게 하면 조상이 말에 담아둔 지혜라는 가장 큰 유산을 잃게 된다. 오늘날의 우리도 그렇지만 후세에게 물려줄 지혜라는 자산은 세상을 모국어로 조직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1899년 중국인들은 은나라의 수도로 잘못 알고 있던 곳에서 상나라의 갑골문을 발굴하였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왔던 자신들의 옛문자를 되찾게 되면서 그림으로 뜻을 어떻게 구성하고 전달해왔는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겨우 100년이 지났을 뿐이다. 반면 우리는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만드시면서 15세기에 사용하던 말부터 글자로 남길 수 있었다. 우리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글자를 만들어 사용해 온 사람들도 많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말이 담고 있는 논리적 연결고리를 되찾아 우리의 자녀세대에게 남겨주는 일은 세종대왕의 뜻을 따름과 동시에 그를 뛰어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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