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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 admin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간단히 문학, 역사, 철학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이는 제대로 된 설명이 아닌 인문학을 구성하고 있는 대표적인 요소를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정수(integer, whole number)를 ‘···, -3, -2, -1, 0, 1, 2, 3, ···’이라고 나열한다고 해서 이것이 올바른 설명이 아닌 것은 누구나 안다. 정수에서 정(整)은 그 이하의 자릿수가 없다는 뜻이며 영어로는 integer는 ‘손대지 않은 것’ 혹은 whole number는 ‘온전한 수’를 말한다. 반대로 ‘손을 대서 온전하지 못한 수’란 그 이하의 자릿수가 있는 ‘분수’나 ‘무리수’이다.

인문학을 서양에서는 humanities라고 부르는데 바탕이 되는 낱말은 human, 즉 ‘사람’이다. 그러므로 humanities란 사람을 연구하는 사람과 관련한 학문을 말한다. 중세시대가 끝을 맺는 14세기와 16세기 무렵의 서양에서는 르네상스(Renesance)가 일어났는데 이 말은 ‘다시 태어남’의 뜻이다. 중세 이전인 고대에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생각을 하였고 신조차도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세에는 모든 것을 신을 중심에 두었기 때문에 ‘암흑시대’로 부르기도 한다. 중세를 끝내고 새롭게 태어난 학문이 바로 humanities이다. 신에서 사람으로의 중심이동은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에서의 증명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논리적 학문으로 태어났으므로 이를 ‘클래식’으로 부르기도 한다.

반면 동양에서는 ‘인문학’이라고 하였다. ‘사람(人)’에 관한 학문이기도 하지만 ‘글(文)’ 또한 사람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과학적 증명법을 사용하지 않는 논리적인 생각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말과 글이기 때문이다. 말은 생각을 담은 그릇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각을 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글은 비록 말에서 나왔지만 성능이 훨씬 뛰어나서 말보다 더 깊고 정교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수학적 표현이나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는 글의 이러한 특징을 아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사람에 관한 학문을 사람과 글에 관한 학문으로 이름을 적절히 바꾸어 부른다.

르네상스가 일어나던 무렵 우리나라에서도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세종대왕께서는 우리말을 제대로 담을 수 있는 훈민정음이라는 새롭고 효율적인 그릇을 만들어 지배계급이 아닌 민중들에게 주셨다. 훈민정음을 읽어보면 우리의 말이 중국의 문자와는 서로 맞지 않아서 한자로는 저마다의 생각을 제대로 실어 펴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야 우리말을 쓰는 사람들이 제대로 우리의 생각을 글로 담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드디어 민중들도 자신의 글자를 이용하여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처럼 우리 역사에 빛나는 일이 또 있을까! 세종대왕의 인문정치란 조선의 힘 없는 사람들이 조선말과 글로써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돕는 일이었다.

남의 말이나 글로는 우리의 생각을 제대로 담을 수도 없고, 생각을 할 수도 없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에 석의를 단 사서석의(四書釋義)를 쓰시고 조선의 성리학에 최고정점을 이루셨던 퇴계 이황 선생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이황 선생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한자가 아닌 훈민정음으로 도산 12곡을 지었다.
남의 글풀이에 몰두했던 조선의 성리학에 최초로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이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다. 학이시습(學而時習)을 두고 오늘날까지도 단순히 배우고 익히는 것으로 읊어대던 조선사람들에게 처음으로 다산 선생은 ‘학은 아는 것이고 습은 행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정약용 선생은 앵무새와 같던 조선의 성리학을 최초로 비판하고 우리말로 그 뜻을 재해석하려고 노력하였던 실학자이셨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머니로부터 배운 말이 가장 쉬운 법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사람에게는 한국말이 가장 또렷하다. 그런데 이러한 한국말에는 오래 전부터 한국사람이 보아온 세상이 오롯이 담겨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한국말을 통하여 조상들이 이루어 온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글자나 서양말로 하지 않고 한국말로 하는 인문학은 한국적인 눈으로 세상을 재는 ‘잣대’와 같다. 잣대는 세상과 우리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아주 좋은 도구가 된다. 더 나아가 정확한 잣대를 가진 사람은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 ‘줏대’를 가진다. 그 결과 자신의 삶을 더욱 적극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의지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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